소
설리뷰 :: 실패한 여름휴가, 2020, 허희정, 문학과지성사
모래는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파운드 케이크」 9p
실패한여름휴가는 2020년 허희정작가의 소설집이다.
190여페이지 정도의 소설 모음집으로
「파운드케이크 」 「우중비행 」 「실패한 여름휴가 」
「stained 」 「망가진 겨울여행 」 「인컴플리트 피치 」 「페이퍼 컷 」
총 7편으로 이루어졌다.
우울함과 불안함들이 소설들의 전체적인 흐름을 관통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균열에서 나오는 감정들.
섬세하고 때로는 기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파운드 케이크」에서는 연인 모래의 부재에 대한 기다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연인인 모래가 사라진 후 세계가 무너지고
언어가 사라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럼에도 모래의 부재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연인이 돌아왔을 때에도 모래와의 세상은
예전처럼 돌아 갈 수 없었다.
다만, 내가 공들여 닦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마룻바닥 위에 먼지 구덩이가 내려앉아 있었다.
P31
「우중비행」에서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버린
지구로의 회귀를 알아보기 위해
떠난 Q의 흔적을 찾아가는 G의 여정을 다룬다.
소설의 제목인 「실패한 여름휴가」에서는 권태기가 온
연인의 폐쇄적인 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우울함이 전체를 지배한다.
장기하의 <싸구려커피>에 나오는
끈적한 장판을 밟은 것과 같은 찝찝함으로
연인 사이의 권태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연애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 이 소설에서는
마침표(.)대신 쉼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
언제나, 부재 앞에서 나는 가장 잔인하고, 네가 없는 방 안에서 나는 그때 네가 지을 표정을 골똘히 생각한다, 마치 그것을 내가 볼 수라도 있는 것처럼, 그것을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처럼, 네가 그것을 나를 위해 마련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staind」에서는 불안의 감정들이 빨간 공과 삼각형과
같은 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균열을 받아들인 이후의
삶이 의외로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빨간 공을 줍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staind」 112p
「페이퍼 컷」을 통해 작가는 몰아 붙이는
불안과 우울의 감정들을
'잘라버리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서
불안함이 가득 찬 세계의 균열 밖으로 나아간다.
A가 커터칼을 집어들었다.
「페이퍼 컷」 191P
소설이 가진 불안함은 표지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기하학적인 모양의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원의 모습.
굳건한 정육면체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인간의 불안함이 사랑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너져 내리더라도 결국엔 다시 올릴 수 있다는 믿음.
새해에 시작하며 읽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조용히 본인의 내면의 감정과
마주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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